1. 네로의 권력욕과 질투심
AD 54년~68년에 재위했던 로마의 황제 네로(Nero Claudius Caesar Augustus Germanicus)는 본래 로마 황제 후보 자격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 아그리피나(Julia Agrippina Minor)가 숙부 클라우디우스 황제의 부인이 되자, 네로는 황제의 왕자가 되었고, 황제의 친아들인 브리타니쿠스보다 연장자이었기 때문에 제위 계승의 우선순위를 얻게 되었습니다.
54년 그의 어머니 아그리피나는 황제 클라우디우스를 독살했고, 네로는 16세에 허울뿐인 황제가 되었습니다. 실권은 그의 어머니와 측근들의 휘둘렀습니다. 그녀는 여제처럼 권력을 휘두르며 네로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자 하였고, 이를 위해 황제의 친아들 브리타니쿠스를 지지했죠. 어머니의 브리타니쿠스에 대한 지지에 질투를 느낀 네로는 55년 자신의 사촌이자 의형제인 브리타니쿠스를 독살했습니다. 이후로는 어머니 아그리피나를 제거하기 위해 일련의 음모를 꾸몄습니다. 그녀는 생존본능이 강했고 네로는 결국 자신의 어머니를 칼로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네로는 자신에게 위협이 된다 싶으면 그 누구라도 살해하는 공포정치를 계속해 나갔습니다. 그러나 결국 영원할 것 같았던 권좌에서 밀려나 공공의 적으로 지목되었고, 도망치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2. 질투심은 일을 하는 원동력
테미스토클레스(Themistocles, BC 528년경~BC 462년경)는 고대 그리스의 장군이자 정치가였습니다. BC 493년 집정관으로 뽑혔고, 군항건설과 해군증강을 통하여 자신의 조국 아테네를 그리스 최강의 해상 강국으로 만들었으며, 전술과 심리전에도 능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질투심이 대단한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그의 정적인 밀티아데스(Miltiades)가 BC 490년 마라톤 전투에서 페르시아 군대를 물리치자, 그는 질투심에 사로잡혀 "밀티아데스의 승리는 나의 잠을 앗아갔다"라고 선언했다고 합니다. 그는 육군 증 강론자인 밀티아데스와는 반대로 해군 증강을 통하여 아테네 함대를 지휘하였고, BC 479년 살라미스에서 페르시아 해군을 격파했다고 합니다. 그의 질투심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는 질투심으로 또 다른 정적인 아리스티데스(Aristeides)의 제거를 위한 작업에 나섰습니다. 그러나 그는 BC 470년 후반에 부패 혐의로 추방되었다고 합니다.
그는 함께 힘을 합쳐 일하는 친구나 동료를 질투심의 대상으로 바라보며 일을 한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그의 질투심은 약간 아이러니하지만 그가 일을 하는 원동력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는 어찌되었던 아테네를 그리스 제일의 해군 국으로 만들었으며, 페르시아군을 상대로 큰 승리를 일궈내는 등의 업적을 남겼습니다.
3. 보나파르트 집안의 미운 오리 새끼
나폴레옹 보나파르트(Napoleon Bonaparte)의 동생 뤼시앵 보나파르트(Lucien Bonaparte)는 자수성가한 형인 나폴레옹과 자주 마찰을 빚었다고 합니다. 그는 처음에는 형 나폴레옹을 지지했지만, 프랑스 혁명이 배신당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환멸을 느꼈다고 합니다. 뤼시앵 보나파르트는 나폴레옹의 정책을 반대하는 소책자를 작성하여 발행하는 등의 일을 하며 형의 반대편에 서기까지 했습니다. 당연히 형제 사이는 틀어지게 되었습니다.
1804년 뤼시앵 보나파르트는 로마 망명길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로마 교황은 그를 카니노 공으로 책봉하여 나폴레옹의 심기를 건드리게 되었죠. 이에 나폴레옹은 1809년 교황을 감옥에 집어넣었습니다. 결국 뤼시앵은 미국으로 향하다 영국군에 체포되어 몇 년 동안 포로 생활을 했고, 나폴레옹이 권좌에서 물러나면서 다시 프랑스로 돌아왔다고 합니다.
오늘 역사적인 인물들의 사례를 통해 질투심이 어떤 일을 했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질투심에 사로잡혀 살았던 인물들의 결코 행복하고 즐거운 삶을 산 것 같지는 않네요. 개인적인 의견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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